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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라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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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갤러리강호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6-07-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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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전시작가 : 강민아, 모지웅, 서준영, 신소윤, 한효진

ㅇ 전시기간 : 2026. 8. 1. ~ 8. 11.

ㅇ 전시장소 : 갤러리 강호


전시 서문

 

 사진은 배경을 지우면서 초상을 만들어왔다. 벽에서 무늬를 지우고 초점에서 풍경을 걷어냈다.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렸다. 남은 사람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사진은 오래 말해왔다. 그 말의 끝에서 사진은 증명사진에 닿았다. 흰 벽과 어깨와 얼굴. 사진이 내력을 지웠고, 제도는 그 얼굴을 신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람은 배경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먼저 불린다. 딸이라고 불리고, 동생이라고 불리고, 몇째라고 불린다. 이름은 나중에 오고 부름이 먼저 온다.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돌아보게 되어 있고, 돌아보는 순간 그 부름이 제 것이 된다. 부르는 말은 낱말 하나의 꼴을 하고 있으나 낱말로 그치지 않는다.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는 너는 누구의 딸이라는 문장이 통째로 들어 있다. 사람을 부르는 말은 다 그렇다. 줄여서 낱말처럼 부를 뿐, 적으면 문장이다. 누구의 아내. 몇 인 가구. 어느 집 둘째. 족보가 그 문장을 세로로 적었고, 등본이 칸 안에 적는다. 사람은 제가 쓰지 않은 문장에 서명 없이 등장한다. 그렇게 쓰인 문장들이 한 사람 위에 쌓인다. 딸이라는 문장 위에 아내라는 문장이 쌓이고, 그 위에 엄마라는 문장이 쌓인다. 쌓인 문장들을 걷어내고 남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문장 속에서 살고, 끝내 문장으로 되어 있다.

 

문장 속에서 사람은 주어가 되기도 하고 목적어가 되기도 한다. 제 문장의 주어로 사는 날은 드물고, 남의 문장 속에서 부속으로 사는 날이 길다. 돌보는 사람으로, 곁에 있는 사람으로, 배경으로 산다. 배경이라는 말은 사진의 말이기 전에 사람의 말이다. 개어놓은 이불은 방에 남고, 갠 손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물 뒤로 밀려나고, 사물이 사람을 대신 말한다.

 

사진가는 사람 위에 쌓인 문장을 찍는 사람이다. 사람만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놓인 자리까지 찍는다. 찍힌 자리가 찍힌 사람을 서술한다. 배경은 인물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가 배경을 지워도 그 말은 그치지 않는다. 지운 자리에는 지웠다는 진술이 남는다. 사진가는 배경 없는 초상을 찍지 못한다. 서술을 받아 적거나, 고쳐 쓰거나, 다른 데서 빌려 올 수 있을 뿐이다.

 

문장은 낱말만으로 되지 않는다. 낱말과 낱말 사이를 잇고, 나란히 놓고, 묶고, 끊고, 빌려 오는 부호가 있어야 문장이 된다. 사람의 일이 꼭 그렇다. 사람이 낱말이라면 관계는 부호다. 딸이라는 낱말은 어머니 없이 서지 못하고, 언니라는 낱말은 동생 없이 서지 못한다. 낱말을 살게 하는 것은 낱말이 아니라 그 사이다. 부호는 소리가 없다. 읽을 때 발음되지 않고, 사전에 뜻이 실리지 않는다. 뜻을 갖지 않으면서 뜻을 성립시킨다. 관계가 그렇다. 관계는 이름이 없고 소리가 없으나, 관계가 빠진 자리에서 사람의 뜻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 모인 다섯 사진가는 쌓인 문장에서 부호를 찍었다. 낱말이 아니라 부호를, 사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찍었다. 그래서 다섯 사진가는 저마다 부호 하나씩을 닮았다. 다섯 부호가 사람의 문장을 나누어 맡는다.

 

강민아의 《One Comma》는 쉼표다. 부엌에 선 사람의 얼굴은 말이 없다. 얼굴이 말하지 않는 것을 세간이 말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세간은 그 사람의 연대기다. 언제부터 혼자였는지, 몇 끼를 혼자 지어 먹었는지가 거기 적혀 있다. "처음부터 혼자인 사람은 없다. 누구나 누군가와 함께였고, 때로는 떠밀리듯 혼자가 되었다"고 작가는 썼다. 함께였다는 것은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소리가 그쳤다는 것이다. 부르는 소리가 그 방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그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흔히 둘이었다. 자유롭겠다는 시선과 외롭겠다는 시선. 작가가 마주한 방에는 그 둘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었다. 쉼표는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표지다. 그 방 안에는 한 사람이 있었고, 쉼표가 있었고, 이어질 무언가가 있었다.

 

한효진의 〈SISTERS〉는 가운뎃점이다. 언니·동생. 붙이되 합치지 않는 부호다. 작가에게 언니는 없었다. "내게 없는 언니는 늘 갖고 싶고 알고 싶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고 작가는 썼다. 그 바람은 나이 들수록 커져서, 이십 년이 지나 중년의 자매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 앉혔다. 흰머리가 난 동생도 언니를 언니라고 부른다. 부름은 그대로인데 사는 집이 달라졌다. 자매는 둘 중 한 사람의 집에 나란히 앉는다. 그 집은 한 사람의 세월은 말해주지만 다른 한 사람의 세월은 말해주지 않는다. 같은 배에서 나와 다른 살림을 차린 사람들이다. 닮은 얼굴이 같았던 시절을 말하는 동안, 배경은 갈라진 세월을 말한다. 작가는 다정한 포즈를 청하지 않았다. 무심한 얼굴에서 관계가 읽히기를 바랐다. 묶여 있으나 각각인 것. 그것이 가운뎃점의 문법이고 자매의 문법이다.

 

모지웅의 《Family Form》은 괄호다. 서류는 혈연을 묶고, 혈연 아닌 것은 묶지 않는다. 등본의 칸은 좁고, 칸에 들지 못한 사람은 남남으로 적힌다. 제도는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도 말한다. 불리지 않은 사람들은 저희끼리 서로를 불렀다.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이 같은 집에 있었다. 작가는 집들을 찾아가 그 사람들을 찍었다. 포즈를 청하지 않았고, 빛을 꾸미지 않았다. 웃으라고 말하지 않은 자리에서 살림이 대신 말했다. 함께 사는 집에는 함께 산 흔적이 있고, 흔적은 서류보다 오래 정직하다. 괄호는 이미 쓰인 문장 위에 나중에 그려 넣을 수 있는 부호다. 제도가 문장을 다 쓰고 도장을 찍은 뒤에도, 괄호는 그어진다.

 

신소윤의 《Trophy_Me》는 마침표다. "나는 오랫동안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딸로 살아왔다"고 작가는 썼다. 아내라고 불리면 아내로 대답했고, 엄마라고 불리면 엄마로 대답했다. 부르는 쪽은 여럿이었고 대답하는 몸은 하나였다. 부름에 대답하는 동안 사람은 제 이름을 잊는다. 남의 문장 속에서 작가는 주변인이었고 배경인이었다. 젊어서 어머니를 잃었고 언니를 잃었다. 상실은 장례와 함께 끝나지 않고 몸 안에 남아서, 중년의 어느 날 공허로 돌아왔다. "그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고 작가는 썼다. 이번에는 부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물가에 섰고 바위 위에 섰다.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갔고, 낯선 도시까지 갔다. 트로피는 남에게서 받는 물건이다. 작가는 그것을 제 손으로 제게 주었다. 얼굴은 빛에 지워졌다. 감춤으로써 오히려 분명해지려는 얼굴이었다. 마침표는 문장을 끝내는 부호다. 그러나 마침표가 찍히지 않으면 다음 문장은 시작되지 못한다. 끊긴 문장 뒤에서 작가는 다음 문장의 첫 글자 섰다. 그렇게 서서 확인하는 것은 하나였다. 살아 있음.


서준영의 코스프레 연작은 따옴표다. 코스프레는 인용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의 문장을 빌려다가 제 몸에 입는 일이다. 일상은 부지런히 부른다. 회사원이라고 부르고, 학생이라고 부르고, 어느 집 자식이라고 부른다. 코스프레하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 못 들은 척하고, 있지 않은 세계에서 오는 부름에 대답한다. 행사장의 벽과 회색 배경지가 일상의 말을 막아선다. 의상이 낱말이 되고 소품이 낱말이 된다. 작가는 이 인용의 내력을 짚었다. 비전문의 놀이라고 불리며 변두리에 있던 것들이 문화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왔고, 코스프레 사진은 그 걸음의 기록이라고 썼다. 따옴표 안의 문장은 빌린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빌릴지는 말하는 사람이 정한다.

 

부호는 문장에서 가장 작은 것들이다. 쉼표 하나가 빠지면 이어지던 삶이 끝난 것으로 읽힌다. 가운뎃점이 빠지면 한 짝이던 두 이름이 낱낱의 나열이 된다. 괄호가 빠지면 함께 사는 사람들이 남남으로 읽힌다. 마침표가 빠지면 새 문장이 시작되지 못하고, 따옴표가 빠지면 빌린 말과 제 말이 뒤섞인다. 문장은 낱말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부호에서 무너진다. 사람이 문장으로 되어 있다면, 사람도 부호에서 무너진다. 관계는 부르고 대답하는 작은 자리에서 성립하고,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다섯 사진가가 찍은 것은 그 자리들이다. 다섯 부호가 모여서, 사람이라는 문장이 겨우 쓰인다. 증명사진은 내력을 지운 얼굴이다. 내력이 다 적힌 얼굴을 사진은 초상이라고 부른다. - 모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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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아) one comma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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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아) one comma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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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웅) 가족형태(family form) 39.5 X 33.7cm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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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웅) 가족형태(family form) 90 x 60cm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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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영)_증명사진#01_피그먼트 프린트_77x58cm_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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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영)_증명사진#02_피그먼트 프린트_77x58cm_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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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윤) #056_©SoyoonSHIN=Trophy_Me.jpg.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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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윤) #057_©SoyoonSHIN=Trophy_Me.jpg.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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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진) 민자 미경, 20x20cm Archival Pigment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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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진) 승연 현승,  90x60cm Archival Pigment, 2023
[이 게시물은 갤러리강호님에 의해 2026-08-09 14:04:53 예정전시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갤러리강호님에 의해 2026-08-14 23:39:28 현재전시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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