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재 작가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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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갤러리강호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24-08-07 10:04본문
희재 작가 초대전
2024. 8. 14.(수) ~ 8. 26.(월)
갤러리 강호
김희정(희재)의 새로운 회화적 시각상
윤우학
(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고문
(현) 국립충북대학교 명예 교수
작가 김희정(희재)의 정물화에 나타나는 사물의 기화(氣化), 내지 증발(蒸發) 현상은 오늘날의 회화가 새롭게 나아갈 일련의 단초를 제공한다. 유화를 통한 그의 이 기묘한 물리현상과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색과 빛의 특이한 융합, 그리고 그 미묘한 색조의 확산은 화면에 일루전의 또 다른 메커니즘을 구성한 채, 회화 본래의 평면성의 조건을 활성화시키고 마침내는 신비로운 구상회화의 시각상(회화 특유의 무중력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저리)의 매력을 관람자들에게 새롭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대상의 단순한 형태적 카테고리에 갇혀 있지 않을 듯한 이미지의 기묘한 물체성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대상과 이미지, 그리고 색과 빛이라는 복합적 요소의 개념적 유희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회화의 장(場), 그것도 막다른 길에 선 구상회화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뿐더러 유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을 한껏 살려 화면에 독특한 빛의 중층성(重層性)을 형성하여 유화가 아니고서는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색채를 이끌어 물체 주변에 미묘한 감성의 회유가 파생케 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표현되고 있는 대상의 이미지가 비록 많은 변신의 과정을 보이더라도 사물의 물체적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변신이라는 사실이고 이것은 그의 회화가 대상과 이미지의 상호관계의 앞 뒤에서 이미지를 예민하게 출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그의 대상화의 시발점이 사진이라는 점은 그것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하고도 있다. 말하자면 대상과 이미지, 그리고 색면과 빛의 고차적 함수관계를 평면 위에 교묘하게 살려내어 회화의 본래의 구상적 매력을 예리하게 가꾸어 내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의 화면은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 여러 가지 색면 중첩의 다채로운 변신은 물론, 모호한 물체감을 모순적으로 느끼게 하여 이미지의 독자적이고 다원적인 존재 방식의 한 가능성을 제시하고도 있다.
사실 오늘의 현대미술, 그것도 포스트모던 이후, ‘회화’의 존재가 얼핏 축소되고 진부한 존재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워낙 다양한 예술 현상이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까탈스러운 회화의 위상이 더욱 축소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회화 자체도 추상회화의 강력한 간섭작용과 더불어 그 역설의 그늘에서 새로운 양상의 전개를 갖지 못한 채, 다양한 매재(媒材)의 복합적 전개에 휘 말리어 본래의 특성을 잃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회화 자체가 자신의 존재감은 물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변신에 대한 구체적 실험 의지와 용기의 부족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화가 제 역할을 찾아가는 비전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소위 ‘포스트 모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이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포스트모던에서 그 반발이 생겼던 우여곡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를 거치며 회화는 회화 나름의 자생력을 찾으려 새삼스럽게 노력하고 있으며 또 사실상 국제미술계의 움직임도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려는 의지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회화가 갖는 지금까지의 전통과 그 존재적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주로 표현의 방법을 활성화시켜 회화 본연의 조건을 유기적인 차원으로 바꾸는 데 집중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의 일부 상황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역시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와 같은 김희정(희재)의 기묘한 전개 방식은 아직은 단편적일지 모르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분명하게 던지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엿보이는 회화적 조건의 활성화가 이미 굳어 버린 구상 및 추상 양식의 함정을 탈피하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생성한 물체성의 주변에서 마치 안개처럼 피는 색채의 불가사의한 변신과정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어쩔 수 없이 뒤 따르는 종래의 관념적 경계를 무의미하게 하는 절묘한 중립적인 개념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회화적 실험이 아직은 본격적인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강한 터치에 의한 표현주의적인 전개가 여전히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고 또 오일스틱에 의한 독특한 색채 전개의 소품 작업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 사실은 그가 아직은 본격적인 실험의 단계에 뛰어드는 것을 심리적으로 망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물론 그러한 작업에서도 그의 재능과 실험의식은 살펴 볼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의 작업에 앞서와 같은 독특한 시각상이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고 그것이 그의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를 갖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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