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기 작가 개인전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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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갤러리강호 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22-10-15 20:29본문
백홍기 작가 개인전 『숟가락』
전시기간 : 2022.10.25~10.31
- 숟가락 -
작업노트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에 막 밥을 떠넘기려는 내 얼굴이 비쳤다. 물끄러미 숟가락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숟가락 속 나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얼굴 앞에 수십 년간 밥을 삼키며 남긴 흔적들이 나이테처럼 번져 있었다. 그 흔적들 가운데 할아버지가 남긴 것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무병장수한 사람의 숟가락을 쓰면 건강하게 살 거라며 할아버지의 숟가락을 챙겨주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단 하루도 먹지 않은 날이 없었다. 먹는다는 것은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가야 할 내가 멈출 수 없는 행위다. 하루 하루 삼킨 것은 내 목숨이었고, 삶이었다.
‘숟가락’ 작업은 먹고사는 문제를 다룬 두 번째 작업이다. 의식주 문제 중 ‘주’를 다룬 <아파트 연가>이후 ‘식’에 집중한 작업이다. 때론 식욕과 무관하게 생을 이어가기 위해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생과 무관하게 욕구에만 탐닉할 때도 있다. 생과 욕구가 간섭하지 않는 순간에도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의 영역에 늘 먹는 행위가 있다.
숟가락은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 사는 문제에까지 걸쳐있는 도구다. 둥글고 납작한 단순한 형태. 아무리 담아도 한입 크기를 넘지 못하는 미미함. 그 단순함과 미미함의 면에 수많은 사람이 삼킨 무수한 삶이 긁혀있다. 사람들이 수저에 남긴 삶을 들여다보며 작업을 시작했다. 어린아이, 젊은 청춘, 느긋한 중년, 무심한 노인까지 수저 앞에 앉아 자신의 수저를 바라보게 했다. 불규칙한 흔적들 뒤로 그들의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 너머로 수저의 주인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생이 어른거렸다.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에 삶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흔적 너머로 내 얼굴이 비쳤다. 밥을 떴다. 오늘도 하루의 삶을 수저에 담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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